[한겨레 창간기획] 이주시대, 스포츠로 경계를 넘다⑤
비누샤(18)가 축구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8년이 지났다. 스리랑카에서 처음 미국으로 건너왔을
때는 영어로 입을 떼는 것만큼이나 공을 차는 게 어색하고 두려웠지만 이제는 “축구를 내 감정 표현 도구처럼 여기게 됐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생각이 많을 때면 축구를 하러 온다. 축구에만
몰두하고 있으면 편안해진다”고 말한다. 비누샤는 ‘국경없는축구회’(SWB)
여자 중학생팀 보조 코치도 겸하고 있다.
국경없는축구회가 이주민 청소년들을 운동장으로 끌어내기까지 넘어서야 하는 경계선은
비단 국경뿐이 아니다. 성별에 따른 스포츠 접근권 격차 역시 단체의 주요 과제다. 국경없는축구회 누리집의 ‘성 평등’ 카테고리를 보면 여성 청소년은 남성 청소년보다 14살 때 운동을 그만두는 비율이 두배 높고, 스포츠 장비나 가까운 관계에서 롤모델을 찾기도 더 어려운 환경 속에
놓여 있다.
현장의 코치들은 문화적 제약, 가정
내 인식, 안전 우려 등을 원인으로 지적한다. 7년째 국경없는축구회에
몸담아온 프로그램 매니저 매디 보스턴(31)은 “아들은 연습에 보내도 딸은 집안일 때문에 늦을 것 같다고
말하는 가정이 많다. 치안 면에서 딸에 대한 안전 우려 역시 더 크다”며 “이런 요소가 쌓여서 구조적인
제약을 만든다. 여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고 했다.
브라질
선수 출신 코치인 벨라 부차렐리(25)는 “이민자 가정에서 딸들에겐 너무 큰 책임감이 지워지곤 한다. 그들은 통역사이자 변호사, 의사 역할을 대리하며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 아이들이 그저 아이로 지낼 수 있는 공간을 갖는 일이 성장에 있어 매우 중요한데, (축구를 통해) 스무살이 아닌 (본래
나이) 열두살이 되어 친구 사귀는 즐거움을 찾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크다”고 덧붙였다.
국경없는축구회는 더 많은 여성 청소년들에게 본래 나이대의 즐거움을 돌려주기 위해
곱절의 노력을 기울인다. 코치들은 학교와 가정을 방문하며 축구가 낯선 아이들과 부모를 일일이 설득하고, 미술 수업, 체험 학습 등이 가미된 프로그램을 기획해 흥미를 유발한다. 여학생들을 위한 리그를 신설했고, 정규 시즌은 망설이던 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게 늘 열려 있도록 설계됐다.
지난해 기준 국경없는축구회 프로그램을 수료한 학생의 45%가 여성이었다. 그동안 배출된 여자 졸업생은 1만명을 넘고, 이들 중 대부분은 처음 팀 스포츠를 접해본 이들이다. 2012년 파키스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졸업생 마리얌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전에는 축구라는 스포츠가 있는
줄도 몰랐지만 이제는 축구를 사랑하게 됐다”며 “기회를 갖지 못한 소녀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싶다”고 말했다.
오클랜드/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출처: 한겨레(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960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