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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학생, 유(留)+학(學)+생(生) ] - 박천웅(출처: 사회와 역사 제122집(2019년) 한국사회사학회 )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8.29 13:22:12
조회수
23
내용

※학술행사 참가기- 2019년 6월 14일(금) 09:30~17:00 [ 대구대학교 다문화사회정책연구소 주최 ]


유학생, 유(留)+학(學)+생(生)
<초국적 행위로서 유학: 정책과 실천>

주말에 학교를 거닐다 보면 주중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접하게 된다. 동일한 장소임에도 한국말이 아닌 여러 다른 외국말이 귀에 꽂힌다. 마치 주중에는 어디엔가 숨어 있다가 주말이 되면 나타나는 듯한 이들은 외국인 유학생들이다. 물론 주중에는 한국인 학생들의 존재감이 워낙 두드러진 까닭에 유학생들이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고 그들의 대화가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이겠지만 유학생들끼리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무리지어 가거나, 유학생 가족이 조용히 학교를 산책하는 풍광은 2019년 한국의 대학에서 크게 낯설지 않은 모습일 것이다. 


유학이 북미, 유럽, 혹은 일본이나 중국 등의 선진국이나 강대국의 교육 기관으로 한국 학생들의 ‘나감’이라고 믿어온 우리의 선입견은 현재 14만 명 이상의 외국인 유학생이 한국에 ‘들어온’ 상태라는 사실에 흔들린다. 그리고 이들 외국인 유학생들이 서울뿐만 아니라 한국의 여러 지방 소재 대학에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사실은 이들의 학생으로서의 생활뿐만 아니라, 졸업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환기시켜 준다. 


‘초국적 행위로서 유학’이라는 제목의 국제 학술 대회는 대구대학교 다문화사회정책연구소가 동아시아의 혹은 동아시아인 유학생 이동성(모빌리티)을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하고 이해하기 위한 취지로 기획하여, 2019년 6월 14일 대구대학교 경산캠퍼스에서 싱가포르, 일본, 미국, 그리고 한국에서 온 한국인 및 비한국인 연구자들의 발표로 구성되었다. 발표자들은 국가, 학교, 유학생의 각 층위에서 정치, 경제, 민족(인종), 연결망, 자원, 삶과 꿈 등의 주제를 한국인 및 비한국인 유학생들의 사례를 통해 보여주었다. 


내가 해석한 이들 연구자들의 발표는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몇 명이 들어오고 나갔는가라는 양적인 수치에 대한 집착에서 이들이 어떤 이유로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고, 졸업 후 이들의 삶이 어떻게 이어지게 될 것인가로 초점이 옮겨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유학은 대체로 송출국과 유입국 사이의 구조적 지위 격차나 인적 자본(human capital)의 자기 계발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이에 따르면 유학이란 결국 세계화라는 사회 경제적인 변화 속에서 보다 나은 물질적 비물질적 보상을 추구하는 개인의 전략적 행위로 해석된다. 


실제로 이 관점을 택한 수많은 유학생 연구가 이루어져 왔고, 그 속에서 유학은 세계 시장 혹은 지역 시장에서 지위 경쟁을 위한 지위재 획득의 과정으로 개념화되었다. 이 관점은 왜 영어권 국가로의 유학이 증가하는가에 대해서는 영어라는 언어가 지닌 지배적 위치, 그리고 대체로 영어 구사 국가들이 선진국으로 여겨진다는 점을 전제로 하여, 유학생들이 영어에 능숙해지고 이들 국가 소재의 대학 학위가 제도화된 상태의 문화자본(institutionalized state of cultural capital)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유학이 이루어지고 있다(혹은 증가할 것이다)라는 점을 주장한다. 


그런데 이 관점에서 출발하게 되면 비영어권 선진국이나 강대국(영국 이외의 유럽 제 국가와 일본, 한국, 중국등)으로의 유학을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와 함께, 문화자본 개념을 지나치게 인적자본과 비슷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영어가 가진 지배적 위치는 학문과 사업의 차원 모두 확고하며, 이에 따라 영어 구사력은 개인에게 부속된 능력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렇다면 영어가 모국어나 공용어가 아닌 국가로의 유학, 다시 말해 불어, 독어, 여타 유럽어, 그리고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등의 어휘 구사 능력이 학문이나 사업 등에 어떤 장점이 있는가라는 점은 구체적인 연구에 의해 밝혀진 바가 적다.


아울러 이들 선진국 소재의 대학에서 획득하는 졸업장이나 각종 증명서 및 자격증을 인적자본으로 봐야하는가 문화자본으로 봐야하는가 라는 문제 역시 남는다. 일차적으로 외국 대학의 학위는 개인의 성취와 능력을 입증하기에 인적자본이겠지만, 동시에 학력주의의 제도적 기반이며 이 제도화된 보증 장치에 부가된 사회적 인정이라는 의미에서는 문화자본이다. 따라서 외국 학위와 자격증을 문화자본으로 간주하고 연구하는 경우 이 사회적 인정의 연원을 포착하지 못한다면, 인적자본을 문화자본과 혼용해서 쓴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한국의 경우 구조적 지위 격차나 인적자본 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국가에 의한 적극적 유학생 유치 전략, 각종 대학 평판 지표에 부가된 외국인 학생 숫자, 등록금 동결로 인해 외국인 학생 유치에 사활을 걸게 된 한국의 일부 대학들의 처지라는 국가 내부적 요인들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학술 대회에서 어떤 발표는 외국인 학생 유치에 대해 한국 정부가 어떤 일관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2000년대 들어 한국 정부는 유학생 유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고, 그 결과 2003년 유학생이 1만2천여 명 수준에서2018년 14만 2천여 명으로 15년 만에 11배 증가하는 폭증을 보였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시기에는 느슨해진 입학 및 입국 규정과 외국인 유학생의 증가를 달가워하지 않는 법무부의 시각도 다소 반영되어 있었다. 즉 국내 외국인 유학생의 문제는 국내로 더 많은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고픈 교육부와 국내로 유입되는 ‘외국인’ 유학생을 관리하고픈 법무부, 그리고 정원 외 입학생이 되어 등록금 수입의 증가를꾀하는 국내 대학 당국의 상호 연관 관계 속에 있다. 외국 국적자를 관리 감독할 법무부는 입국 심사 및 비자 발급 시의 자격 요건을 강화하려고 하지만, 외국인 학생 유치에 관심이 많은 교육부와 학교 당국은 입국 요건이 완화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완화된 입학 요건은 다시금 완화된 졸업 요건을 요한다. 게다가 한국의 많은 대학들은 입학 이후 외국인 유학생들을 위한 체계적인 학사 관리를 하지 않고, 학위 과정에 있는 학생들을 위한 수업 배정에 적극적이지 않다. 그리고 외국인 학생들도 졸업 시까지 요구되는 한국어 능력 시험의 최소 자격 요건을 취득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 내 유학생의 증가가 대부분 같은 아시아권 학생들의 유입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8년 대학 학부(전문대 포함) 학위 과정 유학생 5만6천여 명 가운데 아시아 국가에서 유학 온 학생의 숫자는 5만3천여 명으로 전체의 95%, 석박사 과정 유학생 3만여 명 가운데 2만 8천여 명으로 전체의 93%로 사실상 절대 다수를 구성하고 있다. 비록 한국으로의 유학이 세계화라는 현상에 의해 추동되었다고 하여도 결과적으로 보면 지역권화 된 현상인데 이 현상이 비영어권 국가이면서 세계 고등 고육 체계에서 그다지 높지 않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 대학들에게 어떤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한 감이 있다.


한국으로 유입되는 아시아 출신 외국인 유학생의 사례는 한편으로는 정부-학교-유학생의 삼각관계에서 파생된 문제이면서, 영어(권)-한국(어)-유학생 출신국 이라는 글로벌 위계의 역학 속에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영어는 세계 지배 언어이면서 모국어가 다른 사람들을 위한 또 다른 언어(lingua franca)이기에 이에 능숙해지는 것은 인적자본 축적에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 삶을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유학생을 제외하면 한국어와 한국말에 능숙해진다는 것의 효과는 영어에 비춰 미미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 대학과 한국어의 위상과 효능을 감안해서 한국의 외국인 유학생은 대체로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한국을 자신의 글로벌한 야심을 위한 도움 판의 하나로 생각하는 유학생이 한 부류이고, 한국과 자신의 출신국을 연계하는 중개자로 생각하는 유학생이 다른 한 부류이다.이들 유학생들의 졸업 이후의 삶은 위 두 이념적 모습에 더해 자신의 성별, 출신 국가(지역), 재학 중인 학교 소재지, 그리고 전공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발표된 연구들이 이 부분을 명확히 짚은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이공계 전공의 경우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처럼 세계적 수준의 한국 기업에 취직하거나 미국이나 유럽의 명문대학 박사 과정으로 진학하고픈 열망을 보이는 것처럼 보였다. 비록 이들 가운데 일부는—특히 중앙아시아 국가 출신—국가 엘리트로서의 민족주의적 사명과 의식이 질적 자료 획득을 위한 면접에서 드러내곤 했지만, 이는 자신의 지위 획득이 이루어진 후에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글로벌 포부(global aspiration)가 이공계 학생들에게서 빈번하게 나타난다는 점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반면 언어나 사회과학을 전공한 학생들의 경우 직업을 가지더라도 현지 기업의 한국어 통번역, 문서 작성, 여행 가이드 등 한국과 연계된 형태가 많았다는 점 역시 이공계 학생에 비해 두드러진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울러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상황에서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 지방 대학의 학위가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한국의 수도권 대학과 지방 소재 대학의 구조에 맞추어 연구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유학생들에게 초국적 행위로서의 유학은 학교 내외의 생활환경과의 접점과 단절점을 찾고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모바일 기기와 인터넷을 통해 가족 및 출신 지역 친구들과의 연계를 유지하고 있고, 유학 지역에서도 종족 공동체(ethnic community) 및 다른 유학생들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공고히 하려 한다. 


반면, 유학이 이루어지는 학교와 지역 사회와의 연결망과 유대는 생각만큼 빈번하고 강하게 일어나지 않는데, 이는 언어 및 문화적 장벽이 생각보다 강고하기 때문이다. 한 연구 발표에서는 세계적인 위상의 캠퍼스를 꿈꾸는 한 한국의 대학에서 한국어를 말하지 못하는 외국인 유학생이 겪는 바깥 세계와의 단절을 소개하였는데, 이 단절은 많은 외국인 유학생들로 하여금 기존의 유학생 종족 공동체나 온라인 네트워크의 강화를 증폭시킨다.  기존 연결망 -> 학교 내외의 한국인 사회로부터의 배제 -> 기존 연결망의 재강화라는 일련의 과정이 유발하는 외국인 학생의 연결망 확장-제약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순환적 메커니즘은 유학생(留學生)이란 외국의 혹은 타지의 어떤 곳에 머무르면서(留), 학업(學)은 외국의 교육 기관에서 받는, 그러면서도 생활(生)은 동일한 국적(혹은 민족, 종족)의 사람들과의 경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집단으로 이끈다. 다시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주중에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잘 보이거나 들리지 않음에도 주말이나 공휴일에 이들의 존재가 더욱 두드러진다는 것은 결국 이들의 삶이 집합적이면서도 한국인 학생들과 어울리기에는 쉽지 않은 상태임을 말해준다. 이들 고학력 유학생들이 더 이상 등록금을 내고 돈을 쓰는 학생이나 손님이 아니라, 노동자로 그리고 이웃으로 주변의 한국인들에게 다시 나타날 때, 한국인들과 한국 사회에 이들을 세계화의 결과로 만들어진 다문화 존재로 간주할지 고학력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로 간주하게 될지를 판단하는 것은 다소 성급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초국적 행위로서의 유학을 바라보는 국민국가의 시선은 이중적이라는 점은 지적하고 싶다. 


한편으로 세계화라는 프로파간다는 국경을 넘은 인적 물적 자원의 교류를 장려하고, 그에 따라 다언어 구사자(multi-lingual people)와 특정한 종족적 정체성에 갇히지 않은 다문화 정체성을 옹호하는 듯이 보이지만, 다언어 구사와 다문화 정체성의 선호가 다분히 계급적인 면모를 가진 채 진행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국적법과 난민 등의 이슈를 통해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도 국민국가의 경계는 더욱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 등은 여러 선행 연구에서 규명되고 있다.

사실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유학은 핵심적인 연구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김옥균, 1890년대 후반 관비 유학생, 20세기 전반부 일본 식민통치기 조선 내외의 민족주의 및 공산주의 지도자들, 해방 이후 분단과 냉전 체제 하에서 풀브라이트 재단과 미네소타 프로젝트로 특징 지워지는 미국의 교육 원조, 그리고 최근의 전 지구적 인재 담론에 이르기까지 유학이란 19세기 말부터 21세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구 열강과 일본에 비춰 왜소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들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몸부림이면서 동시에 얼마나 왜소한지를 확인하는 사회적 계기였다. 


사회사학회 회원 중에서도 유학과 유학생을 연구하는 분들이 적지 않으니 언젠가 기회가 되면 유학의 사회사뿐만 아니라 종속과 경제 발전, 친일 및 친미파 양성 등과 같은 한국의 현대사를 아우르는 기획 혹은 학술대회를 추진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국적 이동성으로서의 유학에 대한 토론을 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정작 몸으로 깨달은 것 가운데 하나는 지방 도시에서 다른 지방 도시로의 이동성도 쉽지 않다는 우스꽝스러움이었다. 경부선 위의 도시들 간의 이동은 비교적 편리한 편이겠지만, 참가자들이 이외의 도시들 사이를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일정보다 뒤늦게 도착하거나 혹은 앞당겨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은 지방에서 개최하는 학술 대회의 현실적인 어려움 가운데 하나다. 국제대회이다 보니 발표자들 중 일부가 영어로 발표하였고, 이를 위해 노련한 한영/영한 동시통역이 종일 제공되었지만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용어와 내용이 토론 중에 빈번하게 사용되었기에 이들이 완전히 통역되어 제공되었을까 하는 의문은 있다. 


마지막으로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이라는 영어를 한국어로 옮긴 초국적이라는 표현에 대해한 번쯤 한국의 연구자들이 비판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불편함이겠지만 나는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을 초국적으로 번역하는 것이 국가적인 그리고 민족적인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가진 내셔널 (national)에서 ‘국가적’이라는 의미만을 남기고, 역시 횡단과 초월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지닌 트랜스(trans)를 오직 무언가를 뛰어넘는다는 초(超)의 의미만을 전달하도록 사실상 강제하고 있는 것이 트랜스내셔널이 내포하고 있는 바를 풍부하게 하지도 그렇다고 정확하게 전달하지도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국가를 그리고 민족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횡단의 이동성을 초국적이라고 받아들여야할 의무가 없다면, 이 트랜스내셔널이라는 용어가 한국에서 발생하는 여러 유관 적합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계속 활용해야한다면, 트랜스내셔널의 사회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작업도 유의미할 것이라고 본다.




박천웅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투 고 일 : 2019. 6. 30.
게재확정일 : 2019.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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