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2세 ‘法·교육 사각지대’… “미등록 아동 1만여명”
등록일:2016-06-23
미국의 로스앤젤레스(LA) 흑인 폭동과 영국의 런던 테러, 프랑스 파리 폭동사태 등 다문화 사회에서의 사회통합 실패 사례는 이제 막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에 많은 교훈을 던져 주고 있다. 박성혁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23일 “다문화 시대에 맞는 언어와 시민의식, 문화 등의 교육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개선도 중요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적절한 정책·법령·제도적 기틀 마련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도 다문화 시대에 대비해 이주민에 대한 법제도를 마련 중이지만 아직 미비한 상태다.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우선 헌법 전문과 제9조에는 ‘민족의 단결’과 ‘민족문화의 창달’을 국가적 의무로 강조하는 등 민족주의적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또 기본권의 주체를 원칙적으로 ‘국민’으로 한정하고 있다. 박 교수는 “현재의 법 체계는 전형적으로 20세기적 의미의 국민국가를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다문화 현상이 심화하면 국민국가적인 법 체계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문화보호법 실효성 의문=다문화 사회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국적’과 ‘교육’에 관한 제도다. 특히 이주민 2세를 위한 국내 법적 기반이 매우 취약한 실정이다. 우선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기 위한 요건을 규정하고 있는 국적법은 부모의 혈통을 중심으로 하는 ‘속인주의’다. 영국·미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등이 국가 영토를 기준으로 하는 ‘속지주의’를 원칙으로 삼는 것과 대비된다. 외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부모 국적 국가의 법에 따라 출생등록을 해야 하며, 대한민국에 주재하는 국적국의 재외공관에서 출생신고를 하거나 재외공관이 관련 업무를 담당하지 않을 경우 본국에서 직접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부모와 국적국 사이의 관계가 재외공관 등을 통해 행정절차를 밟기 어려운 상태인 경우에는 자녀의 출생등록을 할 방법이 없다. 결국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지만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무국적자가 되는 것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이 2013년 발간한 ‘이주배경 아동의 출생등록’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에는 대략 1만 명 이상의 미등록 아동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주민 2세들의 교육에 대한 법적 규정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교육기본법 제4조에서는 인종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실상 외국인에 관한 규정은 없다. 또 다른 다문화 관련법에서 교육에 관련된 부분을 다루고 있는 것과 달리 정작 초중등교육법에서는 다문화 교육과 관련된 내용을 거의 다루고 있지 않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19조에서 외국인 근로자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을 보장하고 있지만, 법률이 아닌 시행령이고 입학 여부가 학교장 재량사항으로 규정돼 미등록 아동에게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결혼이민자에 치우친 법제=현재 다문화 관련 법제의 지원 대상은 결혼이민자와 그 자녀 위주로 한정돼 있다. 외국인 근로자나 미등록 아동은 법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주민을 위해 의료급여법이 존재하지만, 이는 공식적으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거나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과 결혼한 이주민에게만 해당된다.
사회보장기본법과 국민건강보험법, 국민연금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고용보험법 등 사회보장과 관련해 시행되는 법률을 다문화 구성원에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도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우리나라는 다문화가족 구성원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2008년부터 다문화가족지원법을 시행하고 있다. 또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을 통해 외국인 인력 제도를 총괄, 그들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법률과 그 시행령의 반복적인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법체류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국민의 정책적 지지도 부족=정부의 다문화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도 높지 않다. 박 교수팀이 국민 514명을 대상으로 현행 다문화 정책에 대한 인식도를 조사한 결과, 현재 정부의 다문화 정책(사업)에 대한 만족도(5점 척도·‘전혀 그렇지 않다’ 1점, ‘매우 그렇다’ 5점)가 평균 2.93점으로 나타났다. 현행 다문화 정책에 대해 부정 평가(18.7%)가 긍정 평가(14.2%)보다 많았다. 다문화 정책에 대한 국민 인지도 역시 58.6%가 잘 모르거나 전혀 모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反)다문화’ 인식도 상존=국민은 다문화 관련 법제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주민에 대한 지방선거투표권, 이중국적 등 정치적 권리와 국적 부여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합법체류 외국인 근로자가 내국인과 동등한 정치적 권리(정치 참여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질문에는 37.0%가 반대했다. 난민을 위한 지원 정책 중 내국인과 동등한 정치적 권리 보장에 대한 인식도에서도 ‘그렇지 않다’고 부정적으로 답한 국민이 44.5%에 달했다. 절반가량이 아직 이주민의 정치적 권리 보장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박 교수는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한 지원이 지나치다, 지원을 줄여야 한다, 지원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일반 시민의 인식을 검토하고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권 기자 free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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