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자녀 2만명, 관리 사각지대에
[다문화 인구 200만 시대]불법체류이거나 부모 모두 외국인
의료-교육 등 정부지원 받기 어려워… 전문가 "소외감 없게 보듬어야"
등록일:2016-06-15
“베트남인 산모 한 명이 돈이 없다는데… 혹시 도와줄 수 있나요.”
지난해 초 김해성 지구촌사랑나눔 대표는 다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대구의 한 외국인 지원 단체라고 밝힌 상대방은 “우리는 정부 지원을 받는 단체라 불법체류자인 산모를 도울 수 없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김 대표는 결국 사비 600여 만 원을 들여 산모와 미숙아로 태어난 그의 아이 A(1)의 치료비를 댔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베트남인 엄마는 ‘아이의 양육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며 A를 김 대표에 떠맡기고 도망갔다. 김 대표도 혼자 힘으로 A의 교육비와 의료비 등을 감당할 만한 형편이 아니다. 김 대표는 아무것도 모른 채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있는 A를 볼 때마다 ‘도대체 이 아이가 무슨 죄일까’라는 생각에 빠진다.
김 대표는 “일본과 미국에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살아가는 한국인이 많다. 그들도 자식이 아프면 그 나라에서 인도적인 지원을 해주길 바랄 것”이라며 “한국은 체류 자격 유무와 상관없이 아이들의 의료, 교육 서비스를 보장해 준다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국내 다문화가정 자녀는 20여만 명(2015년 기준). 전문가들은 현재 2만 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A처럼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가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는 없을까.
사실 이미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 다문화가정조차 지원의 정당성을 놓고 거센 논쟁에 휘말려 있다. 인터넷에선 “외국인에게 왜 돈 낭비를 하나” “차라리 우리 국민에게 그 돈을 써라”라는 글들이 쏟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지원 범위를 다문화 인구 전반으로 확장하는 일은 정부로선 부담되는 일이다.
하지만 A처럼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사실상 ‘한국 사람’이다. 결국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외국인과 함께 어울려 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런 아이들을 소외시켜 괜히 ‘반한 감정’만 키운다면 이들이 한국 사회의 갈등을 조장하는 위험 세력이 될 수도 있다. 경기 부천의 한 외국인 지원 단체 김모 국장은 “다문화가정에 예산 대부분이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 외국인 부모의 자녀를 비롯해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고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이 시민단체에 모여든다”고 말했다.
정기선 IOM 이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원의 범위를 조정하는 것은 법과 제도를 뜯어고치는 어려운 작업이다”라며 “다만, 현재 지원이 집중돼 있는 다문화가정엔 꼭 필요한 만큼만 지원하고 남은 예산을 그간 소외돼 있던 A와 같은 아이들에게 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