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사회적응 걸림돌 되는 ‘언어 장벽’
대한민국은 전체 인구의 3.4%가 외국 이주민이다. 매년 10% 내외의 한국인이 외국인과 가정을 이루고 있다. ‘단일 민족 국가’는 더 이상 우리나라에 적용할 단어가 아니다. 바야흐로 ‘다문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한 사회 안에 여러 민족이나 여러 국가의 문화가 혼재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다문화’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이민자를 수용해 왔던 서구 선진국들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다문화로 인한 사회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랫동안 단일 민족주의 이념이 뿌리내렸던 한국 사회도 다양한 인종과 문화적 배경을 지닌 구성원들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통합’이 시급한 상황이다.
정부 차원에서 다문화 정책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지만, 실효성을 거두기에는 역부족이다. 문화일보는 언어·문화·제도 등 우리나라의 다문화 정책과 실태를 5회에 걸쳐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한국어 발음과 맞춤법이 어렵습니다. 한국사람 말하는 속도도 빠릅니다.”
한국의 한 기업에서 생산업무를 담당하는 동남아 이주민근로자 A 씨는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서 한국어에 대해 느낀 점을 이같이 적었다. 그는 직장 상사 및 동료와의 대화에서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해 소개받은 결혼이주민 B 씨의 고민은 “자녀의 학교에서 보내온 가정통신문을 읽고 싶다”는 것이었고, 이주민 자녀 C 군의 고민은 “한국어를 잘해 친구들과 사귀고 싶다”였다.
대한민국을 찾아온 이주민 숫자가 꾸준히 증가하는 다문화 시대에 가장 선행돼야 할 것은 의사소통이다. 실제 이주민들이 한국에 거주하면서 겪는 가장 기본적인 어려움은 단연 언어문제다. 물론 다문화 시대에 맞춰 우리나라도 이주민에게 한국어 교육을 진행해 왔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학교 교육 중심의 정책은 이주민 자녀에게는 의사소통을 일부분 가능하게 했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그들의 어머니인 결혼이주민이나 현재 이주민의 최대 다수를 이루고 있는 이주민근로자에 대한 교육이 배제돼 있다는 점이다.
◇이주민근로자에게 어려운 의사소통= 민병곤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팀은 ‘다문화 시대의 한국어 의사소통’ 연구를 통해 전국 641명의 이주민을 대상으로 이주민근로자, 결혼이주민, 이주민 자녀 등으로 구분해 의사소통 문제를 분석했다. 공통으로 10가지의 의사소통 상황을 제시한 후 어려운 정도를 ‘5점 리커트 방식’(점수가 높을수록 의사소통 어려움)으로 평가했다. 이주민근로자는 ‘직장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3.48점, ‘일반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2.94점에 달했다. 결혼이주민도 ‘가정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2.66점, ‘일반 의사소통의 어려움’도 2.63점이었다. 반면 이주민 자녀의 경우 ‘학교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1.97점, ‘일반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1.78점에 그쳤다.
민 교수는 “미성년인 이주민 자녀보다 성년인 이주민근로자나 결혼이주민이 한국어 의사소통 능력 발달이 더디고 실제 의사소통 상황에서 느끼는 곤란함과 어려운 정도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나 이들에 대한 의사소통 지원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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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에게 더 오래 걸리는 한국어 교육=이주민근로자는 한국어 교육기간이 더 오래 걸린다. 이주민근로자의 경우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보통’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최소 5.2년에서 최대 20년이 필요했다. 유형별로 △한국에 거주하지 않은 채 학습만으로는 19.6년 △학습이 없이 한국에 거주하기만 해서는 7.1년 △한국에 거주하면서 학습이 이뤄지면 5.2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한국어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별로 어렵지 않다’는 수준에 이르려면 학습만으로는 56.6년, 거주만으로는 20.7년, 학습과 거주가 동시에 이뤄져도 15.1년이 걸렸다. 결혼이주민의 경우 한국어 의사소통이 ‘보통’ 수준에 이르려면 학습만으로는 11.8년, 거주만으로는 4.3년, 학습과 거주가 동시에 이뤄지면 3.1년이 소요됐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기 위해서는 학습과 거주가 동시에 돼도 13년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이주민 자녀의 경우 한국어 의사소통의 어려움은 학습이나 거주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도 이미 ‘보통’ 수준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이주민 자녀에 대한 한국어 교육이 우수하다고 볼 수도 없다. 이주민 자녀가 한국어로 능숙하게 의사소통을 하는 데는 학습과 거주가 동시에 진행돼도 5.5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이주민 자녀의 학급 교사 154명을 대상으로 이주민 자녀의 한국어 실력과 학업능력, 교육 적응 정도 등을 설문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이주민 자녀들의 ‘생활 한국어’ 능력은 양호하지만 ‘학습 한국어’ 능력은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다문화 선진국 시스템은 맞춤형·자율형=1960년대부터 이민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독일은 학교에서 체계적인 독일어 교육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독일의 KMK(Kultusminister Konferenz·주 정부 교육문화장관협의체) 학교 부문 책임자인 풍크 박사는 “학교 전체 입학생의 30∼50%가 외국인이거나 이민 2세대 자녀들인데 우리가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독일어로 교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이가 있는 학생들이 독일로 이주하면 독일어만 먼저 배우도록 배정한 뒤 차후에 일반 교실로 가도록 한다”고 말했다. 학교에서는 이주자 부모와의 정기적인 대화를 통해 부모의 요구사항을 수용하고 정책에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