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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향신문] 이중언어 가정 아동 위한 ‘언어 처방전’…부모 마음까지 보듬었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10.16 09:43:06
조회수
228
내용

신혜광·이은혜의 베를린 육아일기



지난 4첫째 아이의 네 번째 생일 즈음 소아과 정기검진에 다녀왔다. 지금까지의 정기검진은 대부분 신체 발달 사항에 중점을 둔 검사들이 많았다. 그러나 네 번째 생일 직후, 그러니까 여덟 번째 정기검진은 조금 달랐다. 부모와 떨어져 담당의와 개별적 상담을 하기도 하고 그림을 통한 심리 검사도 했다. 언어로 의사전달을 해야 하는 것도 필수였다. 아이의 독일어 의사소통에 대한 검진도 포함됐기 때문이다.

 

첫째 아이는 생후 18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다. 코로나19로 인한 공백기를 제외하더라도 꽤 오랜 시간 동안 매일 또래 아이들과 외국어로 소통한 셈이다. 그러나 이 아이의 신체 발달 사항과 맞추어 독일어 수준이 잘 발달하고 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우리 아이가 한국말로 소통하는 만큼 다른 아이들은 각자의 가정에서 독일말로 소통하고 있을 테니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 짐작만 했다.

 

주변의 다른 한국 가정들을 봐도 독일어 소통에 대한 고충이 많다. 집에서는 부모의 모국어인 한국어로 소통하다 보니 독일어에 대한 노출이 적을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단어 사용량이나 소통 방법 등이 유치원의 다른 아이들과 차이 날 수밖에 없다. 아이들 놀이에 행동보다 언어가 더 중요해지는 나이가 될수록 이를 가깝게 체감한다고 했다.

 

큰 아이가 만 네살 되자 소아과 정기검진에 독일어 의사소통도 포함

 

언어교정 치료 존재하는 나라의사가 처방전 발급하고 보험사가 비용 지급

 

유창하지 못한 독일어에 미안함 느끼던 부모도 진료 과정서 마음의 짐 덜어

 

우리 가족은 아이가 출생한 이후 집에서는 모국어 사용을 기본 원칙으로 했다. 소아과 의사, 유치원 선생님은 물론 사회복지사 등 우리가 그동안 만나온 모든 전문가가 하나같이 같은 원칙을 주지했다. 보호자의 어색한 외국어 사용이 되레 아이에게 혼란을 준다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도 역시 미묘한 감정표현이나 세세한 의사표현은 한국어로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우리 아이는 한국어 소통을 잘 따라와줬다. 집안에서 또는 한국말로 소통해야 하는 상황에 잘 적응했다. 매일 두 어른과 같은 언어로 많은 시간을 보내니 결과적으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과정에서 오면가면 다른 부모나 아이들과 소통하며 항상 독일어에 대한 아쉬움과 답답함은 있었다. 때로는 아이가 어색한 상황을 보고 배울까 걱정도 했다. 유치원 선생님이나 담당 의사 와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짧은 독일어로 의도치 않게 위축되기도 했고, 아이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상황이 빚어진 적도 더러 있었다.

 

다행히 독일에는 이렇게 집에서 쓰는 언어와 사회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가정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을 위한 언어교정 유사 과정이 있다. 언어 병리학, 독일어로 ‘로고페디(Logopadie)’다. 아이의 발달과정과 가정환경 등을 고려해 소아과 전문의가 언어교정을 위한 처방전을 발급하고 비용은 건강보험사가 지급하는 방식이다.

 

부모가 아닌 친밀한 상대와 독일어로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는 흔치 않다. 더군다나 공식적인 채널을 통한 기회이니 독일어를 외국어로 인지하는 대다수 또래 아이들이 이 처방전을 바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러나 모든 소아과 담당의가 이 처방전을 발급해주는 것이 아니다. 집마다 경우가 다르고, 병원마다 사정이 다르다. 또한 어렵게 발급받은 처방전으로 언어 병리학 진료 시설을 찾아야 하는데 이 과정 역시 아주 번거롭다. 수요보다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이 진료 시설은 기본 대기기간이 6개월 정도다. 소아과 담당의에게 진찰받은 진단서를 들고 동네 근처 병원을 찾아다녀야 한다. 대부분 병원에서는 일단 대기 명단에는 올리지만, 진료일이 언제일지는 예측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게 4월부터 시작된 진료소 찾기가 8월이 되고 본격적인 휴가 시즌이 닥치자 빈자리가 나왔다. 비슷한 시기 몇 군데 병원에서 연락이 올 정도로 빈자리가 한꺼번에 났다. 집과 유치원 사이에 있는 병원에서 첫 진료를 시작했다. 설레고 긴장된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나섰다. 대부분 모든 유아 진료 과정이 그렇듯 언어치료과정 역시 놀이 같은 진료다.

 

첫 한 달은 아이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해 다양한 검사를 한다. 단어 검사, 문장 검사 등 아이가 지루하지 않도록 꼼꼼하고 세심한 지도로 많은 양의 문진표를 작성한다. 물론 부모와 함께 개별 상담도 한다. 우리 아이의 모국어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어느 만큼 소통이 가능한지, 신체 기능적으로나 의학적으로 다른 문제는 없는지 등 시험을 방불케 하는 검사들을 진행한다.

 

백과사전처럼 두툼한 책에 담긴 내용대로 차근차근 검사하며 그사이에 아이의 집중력을 위해 간단한 놀이도 하고 아이와 친밀감을 쌓으려 선생님도 노력한다. 그림을 보고 상황을 설명하기도 하고 그림을 단어로 표현하기도 하고 퍼즐처럼 이루어진 상관관계를 유추하기도 한다.

 

그렇게 검사가 완료될 무렵 이제는 아이도 선생님과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제법 활발하게 진료에 임한다. 사실 말이 진료이지 아이에게는 놀이라고 설명해도 좋을 만큼 다양한 놀이를 한다. 그래서인지 진료공간은 보드게임카페를 방불케 하는 다양한 놀이기구와 보드게임 등을 구비하고 있다.

 

아이들과 교감하는 데 필수인 역할 놀이도 있다. 뜬금없는 상황극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주변에 보이는 물건들로 특정한 상황을 설정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슈퍼마켓의 점원과 손님이라는 가정하에 해당 상황에 필요한 단어와 문장들을 틈틈이 연습하거나 익숙해지도록 유도한다. 부엌 놀이는 평소에도 아이가 즐기는 놀이다. 부엌과 관련한 상황만 해도 수많은 단어를 동원해 표현하고 소통해야 한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은 놀이인 동시에 연습이고 치료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편안하게 독일어로 책을 읽어주는 상황에서 아이는 나름의 억양과 톤을 기억할 것이다. 언어가 부자연스러우면 책을 읽어주는 소리에도 그 어색함이 묻어난다. 고백건대 아이가 가끔 집에서 독일어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난감할 때가 있었다. 단어와 문장과 발음에 신경 쓰느라 부자연스러워지기 때문이다.

 

하루는 아이가 미니카를 여러 대 가지고 한 시간을 놀았다. 여러 가지 형태의 미니카를 돌아가며 집어 각 미니카와 관련된 용어들을 들어보기도 하고, 평소 길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상황을 재현하기도 한다. 자전거도로와 차도가 겹치는 대목에서는 관련 교통법규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면 병원에 가서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도 듣는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는 사이 아이의 독일어 소통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아이의 진료가 진행되는 동안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인 우리의 인식도 변한다. 독일 사회에 살며 독일어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에 말이다. 모르면 찾아보고 익숙해져야 하고 다음번에는 배운 걸 써보려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아이와 선생님 간 소통을 돕기 위해 아이에게 설명할 때는 한국말로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과정을 여러 차례 겪으며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독일에서 살며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런 생각이 많이 편안해졌다.

 

아이와 선생님과 셋이 둘러앉아 한국어 단어를 알려주기도 하고 독일어 단어를 배우기도 하고 언어를 돌아가며 소통하는 과정은 아이에게도 충분히 자신감을 준 모양이다. 진료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유치원 선생님의 세심한 배려도 한몫했다. 현재 아이는 이중언어의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듯하다. 아이의 서툰 독일어가 그럴 수도 있는 현상이라고 이야기해준 선생님이 고마울 따름이다.

 

독일에서 아이들을 키운 한국 가정의 부모들은 항상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때에 따라 천천히, 때론 재빠르게 각자의 리듬으로 배우며 자라난다고. 지나친 염려는 기우일 뿐이라고. 육아의 다른 모든 과정이 그렇듯 언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머릿속으론 이해하지만 당장 동네 놀이터에서 속 시원하게 소통하지 못하는 순간을 마주하면 항상 생각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출처: 경향신문(https://www.khan.co.kr/life/life-general/article/20231013161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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